영화의 시작
영화 [에듀케이션]의 개봉시기를 배급사와 함께 11월 즈음으로 얘기하고 있던 2020년 여름. 한정된 예산과 촉박한 일정 안에서 만들었던 영화를 정말 개봉까지 하고나면, 마무리를 짓겠구나,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초조해지기도 했다. [에듀케이션]까지 개봉시키고 나면, 이젠 내게 남은 큰 숙제라는 게 없네? 당장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그도 그럴 것이 [에듀케이션]을 촬영했던 게 2018년 여름이었건만 개봉까지가 오게 된 여정이 거의 2년이었다. 지금 바로 촬영을 한다고 해도 2년 후면 2022년이라니. 2020년의 여름의 마음가짐에서 2022년은 아득히 멀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영화를 계속 하고 있어’ 라고 말하고 다녔으면서, 영화를 만들지도 않고 있으면서 무슨 “영화인” 이람. 라는 자책.
당시에 써 둔 시나리오가 2편 정도 더 있었지만, 일정의 예산을 필요로 하는 규모였고 내는 제작지원마다 1차 탈락을 계속하고 있었기에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 시나리오들을 일단 보류한다 치고 제작지원 없이 영화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한번 해볼까? 라는 시작.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라는 치기 어리고 자격지심 같은 발로가 참 우습기도 하지만 솔직하게 그것이 [컨버세이션]의 시작이 맞다. 그 이후엔 제작지원 없이 어떻게 무리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굵직한 스토리텔링을 전개하는 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영화 전체에 큰 컨셉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라면서 일단 쓰기 시작했다. 강박 없는 수다 혹은 술자리에서나 얘기할 법한 주저리주저리 같은 것들은 또 잘도 나온다. 그래, 이 컨셉으로 계속 써보자, 일단 써보고 나중에 수정하고 가다듬으면 되겠지? 하면서 주저리주저리 써놓은 것들. 그 말들을 배우의 몸에 장착하는 상상과 특정 로케이션에 위치해보면서 쓴 시나리오가 [컨버세이션] 이다.
프로덕션의 구성
시나리오를 써놓고 보니 약 10회차 정도의 촬영일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고, 시간의 간극이 있는 편이 영화를 위해 적합해보였다. 스탭도 모두 인건비니, 최소한의 스탭으로 구성한다고 했을 때 촬영에 1명, 사운드에 1명은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 2명만큼은 회차마다 바뀌는 게 아니라 고정스탭이면 좋겠는데... 띄엄띄엄 찍는 일정에 양해를 해 줄 사람은 역시 지인밖에 없었다. [에듀케이션]에 함께 힘을 보태줬던 고마운 동기 오정석 촬영감독과 전미연 PD에게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찍고 싶은 게 생겼어... 라며 시나리오를 내밀어봤는데 별 군말없이 잘 해보자, 라는 답변을 들었다.
촬영일정은 배우 섭외 이후에 스케줄을 봐가면서 정한다고 할 때, 그러면 촬영, 사운드 장비 그리고 미술 등은 어떻게 하지? 라는 고민. 역시 해본 가닥을 더 강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작 [에듀케이션] 에서도 제작비가 부족해서 장비는 모두 다 내 보유 장비를 활용해 (일부 장비는 쓰고 팔 목적으로 중고구매) 진행했고, 미술 세팅은 당시에 저렴한 거는 사오기도 하고 그랬지만, 가구 같은 것은 사기에도 비싸니 길거리를 막무가내로 돌아다니면서 주워오는 억지 같은 전략을 쓴 적 있었다. 이번 [컨버세이션] 때는 그나마 나았던 게 동네 기반의 중고 거래 어플리케이션이 대중화되었기에 소소한 소품 등을 해당 어플리케이션 발품으로 해결을 할 수 있었다.
배우와 함께
[컨버세이션] 이 씬 별로 거의 한 컷씩으로 이뤄져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그렇게 해야한다, 하고 싶다의 부분은 아니었고 한정된 인원이 만드는 제작 프로덕션의 한계 때문에 선택한 전략의 측면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요소들에서 조금 더 경제적으로, 조금 더 욕심을 줄이면서를 거의 기조처럼 지켜가며 대안들을 찾아내고자 했지만, 배우 캐스팅만큼은 처음 먹었던 마음대로 욕심을 내고 싶었다. [컨버세이션]의 가상 캐스팅은 대부분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을 한 바가 있었고, 또 일부 배역은 애초에 배우를 상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대사를 쓴 경우도 있었기에 그걸 실현시키는 게 정말 중요했다.
시나리오가 완성이 됐고, 프로덕션 일정은 배우들 일정을 고려해서 정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제 머릿속으로만 가상 캐스팅했던 배우들을 직접 만날 일들만 남겨두고 있었다. 처음 만났던 것은 곽민규 배우.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게 별로 할 얘기가 없었다. 왜냐면 일정도, 로케이션도, 전체 캐스팅도 다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시나리오는 또 대화 그 자체를 컨셉으로 잡아버리고 있으니, 시나리오의 전개에 관해 이야기할 부분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곽민규 배우가 날 믿어주어서(그렇게 생각하기로 함) 그런지, 그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의 나와 함께 잘 해보자고 흔쾌히 답해주었던 것.
곽민규 배우를 만난 이후에 마음이 조급해져, 머릿속 가상캐스팅 배우들께 시나리오를 우다다 보내고 차례로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곽민규 배우와 반응이 비슷했다. 바로 준비해야할 것이 없었기에 디테일한 얘기를 나눌 것은 없었고, 시나리오에 관한 토의도 적었고, 재밌겠네요~ 그래요, 한번 해보죠! 라는 반응. 사전에 알고 지내던 배우들이 아니었는데 이렇게도 다들 쿨하게 나서주다니, 이 부분만큼은 운이 좋았다, 뭔가 복 받은 것 같았다.
첫 촬영
배우들과 미팅을 진행하고 있던 시기. 하나, 둘 로케이션을 확정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고, 에듀케이션 개봉 직전이었던 2020년 10월 즈음이었다. 6씬으로 설정하였던 로케이션을 도봉구 집 근처 공원으로 마음을 굳히고 나니, 이건 가을에 찍고 싶은데? 란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앉아서 대화하는 장면 위주의 영화이지만 6씬과 엔딩의 경우엔 비교적 꽤 많이 돌아다니면서 대화를 하는 경우에 속했고, 로케이션이 여러모로 중요한 장면이었다. 가을 낙엽이 바닥에 깔려있는 원형 공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두 배우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한창 배우들을 만나던 시기이긴 했지만, 박종환, 곽민규 배우는 비교적 일찍 만났던 배우에 속해 이미 그래요, 한번 해보죠! 란 대답을 들어뒀던 터였다. 이미 10월이었기 때문에 올해 가을을 놓쳐버리면 다시 가을까지 1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마음이 급해져 일정을 잡아보고 나니 11월 17일.
일정이 잡히고부터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A7S3로 찍기로 했지만, 제조사에서 출시 시점에 소량만 푸는 바람에 구매하려고 해도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급을 높여 FX9과 달리셋을 렌탈해 쓰기로 했는데, 역시 테스트 촬영을 한 장비들이 아니어서 그런지 촬영 당일 새벽까지 말썽을 부렸다. 뭔가 계속 안되고, 헤매는 시간이 길어져 결국 새벽에 렌탈샵을 다시 찾아가보니 고장난 장비를 빌려줬던 것. 그 외에도 달리 운용 등 장비에 관한 문제는 촬영 직전까지도 계속 골머리를 썩였건만 그래도 기적적으로 예정된 촬영시간 직전에 모두 해결이 됐다.
첫 촬영일에 딱 한 컷만 OK컷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고, 촬영 진행시간은 거의 하루종일이라고 생각했건만, 막상 진행해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공원은 구청의 허가를 받고 진행하는 것이라해도 전면통제를 할 수는 없었고, 너무 긴 호흡의 테이크 러닝타임동안 지나가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더욱이 오후 3시를 넘으면 근처 어린이집이 마치는 시간이었는데, 그 이후 시간부터는 아이들로 붐빌 것이라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여유있게 한 컷 찍으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기대는 깨지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몰려 나오는 3시 이전에 끝내야돼! 란 생각으로 마음은 조급해하며, 겨우겨우 1컷의 오케이컷을 만들어냈던 기억이 난다.
컨버세이션의 전체 촬영 가운데 6씬이 가장 세팅도 복잡했고(달리를 썼으니깐), 현장 지원 스탭도 많이 불렀고(3명 더 부름), 테이크도 여러번 간 경우에 속했다. 쉬엄쉬엄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즐겁게 찍을 프로젝트라고 생각했건만 역시 그렇지 않구나, 하면서 첫 촬영이 끝나고는 약간의 현타를 맞이하긴 했지만, 또 어찌어찌 한달에 한두번 촬영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불어와 아이
씬 1과 씬5를 하루에 찍는 날. 조은지, 김소이, 송은지 배우가 함께 합을 맞추는 날이다. 연기를 위해서 배우들의 사전준비가 가장 많았던 날이기도 한 게, 씬5는 대부분의 대사가 불어로 되어 있었다. 송은지 배우는 고등학교때 불어를 배웠던 적이 있지만, 조은지, 김소이 배우는 불어와는 영 인연이 없었다. 나처럼.
극 중 설정이 프랑스에서 유학을 다녀온 지 몇 해가 지난 설정이기 때문에, 불어를 능숙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잘했던 적이 있었던 것 처럼은 해야 했다. 하지만 불어를 잘 하는 지 감독인 나도 알 수가 없으니, 우리만의 불어선생님을 섭외해 약 서너번의 미팅을 하면서 발음 가이드 및 리딩을 진행했다. 다른 씬의 경우엔 특별히 연기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 리딩을 진행하진 않았고 인사 차 배우들과 함께 시간을 맞춰 본 것 뿐이었는데 이건 불어 대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였다. 그리고 또 모인 김에 겸사겸사 다른 씬도 함께 상의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촬영 당일. 낮에는 씬 1을 찍었다. 씬 1은 한국어 대사만 있었던 것이었고 진행하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해가 지고 씬5를 찍는데 걱정했던 불어는 배우들 각자가 준비를 잘 해와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아이의 출연부분.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아이엄마가 어르고 달랜다고 해도 생소한 환경에 놓여있던 터라 곧잘 울음이 터졌다. 돌이켜보건대 그렇게 울음이 많던 아이도 아니었고, 아이엄마가 안아주기만 하면 곧 안정을 되찾는 순한 아이였다. 하지만 우리의 테이크 러닝타임은 역시 길었고, 그 영문도 모를 불어 대사 연기가 다 지난 후, 끝 부분에 출연해서 안정된 찰라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타이밍이 문제였다.
여기엔 달리 대책을 찾을 수 없어 쉬는 시간과 촬영을 번갈아가며 진행해보는데, 해결책은 그냥 찾아와 버렸다. 아이도 어느새 생소한 환경에 적응했던지, 아니면 잘 시간이 되었던지 깊은 잠에 빠져버린 것. 코 고는 소리처럼 들리는 쌔근쌔근 숨소리가 얼마나 감사하던지. 조요한군과 큰 용기를 내어주신 그의 어머니 박미리님 감사합니다!
마지막 촬영
2021년 초여름. 영화의 마지막 촬영회차인 10회차, 엔딩씬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첫 촬영인 가을부터 해를 넘겨 여름까지. 계절감이 뚜렷하진 않지만 사계절을 영화에 다 담아낸 셈이었는데, 애초에 그런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첫 촬영만 굳이 가을이고 싶었고, 다른 장면들은 겨울과 봄 정도면 족할 것이었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또 그렇게 됐고 결과적으로 영화에 좋은 작용을 해냈다.
엔딩씬은 조은지, 박종환 배우 두명만 나오는 장면이었다. 사전준비에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촬영환경의 기술적 조성 부분이었다. 로케이션은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정해두었던 양평의 어느 산책로였고, 대사나 감정적인 호응의 경우엔 촬영일에 배우들과 함께 열심히 의논해보면 되겠지. 싶었지만. 이 긴 테이크 러닝타임동안 카메라가 팔로우 무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왜냐하면 애초에 엔딩씬은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 장면을 카메라가 팔로우 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산책로가 평탄한 길이 아니었기에 웬만한 스테디캠 기사가 와도 쉽게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다가, 결국 상황을 바꿨다. 계속 앉아있다가 조금 팔로우 하는 것으로. 카메라 운용 계획을 여건 때문에 바꾸게 되는 경우이기에 아쉽다, 서럽다 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최종 결과물을 보면서는, 이게 더 맞았던 거였군, 이라며 오히려 이렇게 카메라를 운용해서 다행이었다, 란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원래 계획 했던 대로 구현하려는 욕망이 항상 옳은 게 아니구나, 역시 또 한 번 배운 셈. ‘프로덕션의 한계’란 제약이 오히려 영화에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한 소중한 교훈을 엔딩씬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얻어냈다.
편집과 후반작업
[컨버세이션]의 편집은 원래 계획했던 거의 그대로 됐기에 이보다 더 수월할 수가 없었다. OK컷이 여러 개 있는 경우에 어떤 컷을 쓸 지만 고르기만 하면 됐고, 그것의 앞뒤만 트림하고 이어붙이면 끝. 이미 그렇게 찍혀있었고, 다른 선택지 또한 없었다.
색보정은 총 2일간 진행하면서 보완하고 강조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컷이 많이 없다보니 컷과 컷의 노출과 색을 맞출 일이 덜했고, 오히려 그런 색 조정 작업보다 어찌보면 CG쪽 영역에 해당하는 보정작업에 시간을 더 많이 쓴 것 같다. 유리 반사로 비춰져버린 블림프를 지운다던지, 뒤로 지나가는 행인을 지운다던지 등등. 이건 무빙샷이었으면 진짜로 CG 업체에 가야 할 큰 일이었건만, 그나마 고정샷이었기에 베테랑 김형희 기사님의 손 안에서 해결이 될 수 있었다.
후반작업에서 가장 긴 시간을 소요한 것은 믹싱작업이었다. 대화가 중점이 되는 영화기 때문에 대사인지가 안되는 것은 곤란했고 그렇다고 너무 앰비언스를 죽여버리면 가뜩이나 컷도 단조로운데 영화가 갑갑할 것 같았다. 적절하게 현장감을 유지하면서 배우의 대사를 명료하게. 이 밸런스를 잡는 과정은 항상 어렵다. 더욱이 후반작업 또한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속된 말로 편집은 만족할 때까지 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못하겠을 때 끝나는 거다, 라고 하던데 [컨버세이션]의 경우엔 편집은 쉬웠으되, 믹싱작업이 그런 경우에 해당했다. 부산영화제 상영본 제출일에 맞춰서 간신히 믹싱을 끝냈던 기억이 있다.
다 지나고 보니
[컨버세이션]의 제작에 거의 1년이 홀딱 지나갔고, 띄엄띄엄 겨우 16컷을 찍어서 완성하는 영화인데도 생각보단 여유롭진 않았다. 대체적으로 로케이션을 구하고 미술세팅 하는 데 생각보다 품을 많이 들여야 했고, 촬영일 당일은 언제나 뭔가 바쁘고 정신없어서 무슨 일이 있었지 않았냐고, 배우와 스탭들에게 후일담을 들으면 그때서야 아, 맞다 그랬지, 하는 경우가 꽤 많다.
예상과 달랐던 것은 띄엄띄엄 찍으니깐, 다른 일도 같이 겸하기도 하고 다른 시나리오도 디벨롭 하면서 할 수 있겠지? 란 나이브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럴 리 만무했다. 몰아서 찍어버리면 준비했던 것을 바짝 몰아치고, 아- 끝났다, 이럴 수 있었겠지만, 띄엄띄엄 찍으니 이번 달 것 하나 찍고 나서, 아, 이제 바로 다음 달 것 궁리해야 되겠네?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서게 됐다. 빨리 끝내고, 해치우고 아, 개운해(?)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처음엔 영화를 찍어야해! 라는 당위에서 시작했다지만, 촬영기간 동안 그래도 더 좋은 방법이 뭔가 계속 궁리해야해, 라는 추진력을 준 것은 아마도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게 어떤 영화로 만들어질까, 너무도 궁금하다, 는 마음. 그건 각 씬 별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기도 하다. 이 씬에선 3인의 대화를 이런 호흡으로 이어가면 어떨까, 궁금해. 이 씬에선 실제 정당 이름을 내뱉어보면 어떨까, 이 씬에선 이례적으로 침묵의 씬으로 이어가보면 어떨까. 등등. 그런 호기심에 관한 대답이 영화 [컨버세이션]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궁금한 부분은 관객들의 반응이다. 영화제에서 공개 될 때에도 [컨버세이션]에 관객 각자의 상상력을 포개어 감상을 들려줄 때가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이었다.
[컨버세이션]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들어볼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있다. 그만큼 [컨버세이션]은 공백이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딱 들어맞는 정답이 아닌, 기상천외한 누군가의 상상력으로 채워지는 [컨버세이션]. 그런 새로운 매력의 [컨버세이션]을 기대해보며, 마지막으로 함께 [컨버세이션]에 힘을 보태줬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좌충우돌하는 미생 감독과 함께 해주어서 너무도 고맙습니다!